< His Story >"육성까지 책임지는 美처럼.. 스타트업 '에노베이션 탱크' 기획"

2019년 9월 2일 업데이트됨


곽승엽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창업 3년 이내 업체 발굴 후 자금지원·액셀러레이터 연결 투자까지 이어지는 구조 마련 학연보다 성장 가능성에 초점 非서울대출신도 누구나 지원 유학시절 경험이 아이디어로 현대차그룹과 인재양성 협약 CES·로봇 캠프 참관 등 기회 3년간 843명 프로그램 거쳐 “이공계 석·박사 줄어드는데 국방부는 전문연구요원 폐지 공학도 지원 부재 안타까워”


곽승엽(54)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기획의 달인’으로 불린다. 특히 학생들의 창업과 취업을 촉진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쏟아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서울대 공대가 지난해 처음 시작한 기술 스타트업 육성 사업인 에노베이션 탱크(Ennovation Tank)는 곽 교수의 히트 상품이다. 에노베이션은 공학(engineering)과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혁신(innovation)의 합성어다. 2016년 8월부터 현대차그룹과 함께 공학 인재양성 지원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곽 교수는 인재양성 지원사업의 일환인 해외 인턴십 점검을 위해 지난 7일부터 13일까지 현대차 체코 공장 현지답사를 다녀왔다. 귀국 후 이틀 만인 15일 서울대 글로벌공학교육센터에서 만난 곽 교수는 계속된 강행군에 지친 기색이었다. 곽 교수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잠을 설친다”면서 “한국 기술개발 최전선에 있는 서울대 공대가 사회에 어떤 이바지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건 의무이자 행복”이라고 강조했다.


곽 교수는 인터뷰가 시작되자 에노베이션 탱크 사업 이야기부터 꺼냈다. 이 사업은 창업 3년 이내의 초기 스타트업체 5곳을 발굴해 사업지원금 1000만 원을 지원하고 액셀러레이터라고 부르는 창업육성기관을 일대일로 연결해주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서울대 공대는 지난해 3월 사업 공고를 냈고 50개 업체가 지원해 10대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서류전형과 프레젠테이션을 거쳐 최종 선발된 5개 업체는 전문가의 도움으로 아이디어 수준이었던 사업을 구체화했고 지난해 12월 최종 경연을 펼쳤다.

반응은 뜨거웠다. 한국 돼지 폐사율이 외국보다 10배 높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각종 데이터를 기반으로 돼지 건강을 관리하는 기술을 선보인 한국축산데이터는 사업 지원 당시 불과 7개월밖에 되지 않은 업체였지만, 최종 경연에서 깊은 인상을 남기며 30억 원의 투자를 끌어냈다. 나머지 4개 업체도 이 사업을 통해 민간으로부터 적지 않은 지원을 받게 됐다.


곽 교수는 벌써 올해 진행될 제2회 사업 프로그램 구상에 몰두하고 있다. 곽 교수는 에노베이션 탱크 사업을 처음 제안한 인물이다. 곽 교수는 “스타트업 지원사업 대부분이 공모를 받아 상금을 주고 끝내는 식의 일회성 이벤트인 경우가 많다”며 “조직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지 모르는 창업 초년생들에게 지원금은 물론 액셀러레이터를 붙여주고 마지막엔 민간 투자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곽 교수는 현대차 제네시스 운전자의 유휴 포인트를 기부받아 자금을 마련하자는 아이디어를 학교 측에 제안했고 직접 현대차 임원을 찾아가 취지를 설명했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주변으로부터 “당신이 뭔데 일을 크게 벌이느냐”는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특히 창업 3년 이내의 법인이라면 비(非)서울대 출신이라도 누구나 지원할 수 있도록 하자 “서울대 공대 학생들도 힘든데 왜 남 좋은 일을 자진해서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들었다. 곽 교수는 당시 어려웠던 상황을 돌아보며 “그동안 서울대는 지닌 위상에 비해 창업 지원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학연보다는 성장 가능성에 주목해 훌륭한 아이디어를 지닌 사람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종 5개 선정팀 가운데 서울대 출신이 대표인 업체는 1곳뿐이었다.


곽 교수가 ‘창업 전도사’로 변신한 건 미국 유학 시절 경험이 컸다. 곽 교수는 1987년 서울대 섬유공학과(현 재료공학부)를 졸업한 뒤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애크런대 고분자공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3년 1월 한국에 다시 들어올 때까지 곽 교수는 미국 공학계의 탄탄한 저변을 체험했다. 무엇보다 고도의 기술이 창업으로 이어지는 장면을 수차례 목격했다. 곽 교수는 “당시에도 미국은 의지만 있으면 창업에 도전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며 “돈만 턱 던져주는 게 아니라 육성까지도 책임지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고 회상했다.


1996년 모교에 부임한 곽 교수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공대 기획부학장, 2015년부터 2017년까지 학생부학장을 역임하면서 창업을 꿈꾸다 다양한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는 학생들의 고충을 듣게 된다. 곽 교수는 “아이디어는 있는데 예산과 공간이 없다는 하소연이 줄을 이었다”며 “어떻게 하면 이들의 꿈을 이뤄줄 수 있을지 고민하다 보니 여러 행사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곽 교수의 시선은 취업에도 향해 있다. 공학 인재양성 지원사업은 대표적 사례다. 곽 교수는 2016년 8월 현대차그룹과 협약을 맺고 인재양성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획일화된 교육으로 ‘공채형 인재’를 양성하기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인재를 길러내겠다는 학교-기업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이 또한 곽 교수가 학교와 현대차 양측을 오가며 발품을 팔아 성사시켰다.


지원사업 프로그램은 자동차산업 등에 관심이 있는 서울대 학생을 모집해 국내 산업현장 견학, 소비자가전쇼(CES) 참관, 로봇 캠프 등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하고 국내외 인턴십 기회도 제공하도록 설계됐다. 해외인턴십의 경우 공대 학부생 전체에게 이메일을 보내 지원을 받는다. 서울대는 퇴임한 현대차 임원을 교원으로 임용해 ‘공학기술과 사회’라는 과목도 개설했다. 연구·개발(R&D), 글로벌 마케팅 전략, 상품 기획 등을 가르치는 데 머물지 않고 면담과 프로젝트 지도를 병행한다. 이렇게 지원사업 프로그램을 거친 서울대 학생은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843명에 이른다. 곽 교수는 “학생들이 취업 모의 면접을 본 것 같은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며 “관련 기업에 입사했을 때 직무 파악도 훨씬 빠르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뿌듯해했다.


서울대의 이러한 움직임은 최근 신입사원 공채를 없애고 상시 채용으로 전환한 현대차를 비롯해 이와 비슷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대기업의 분위기와도 궤를 같이한다. 곽 교수는 “적성검사, 영어 성적 등 일률적인 기준으로만 사람을 뽑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직무에 가장 적합한 인재를 다양한 루트를 통해 선발하는 추세로 접어들었다”며 “이런 흐름에 맞춰 대학도 교육 방식이 달라져야 하는데 지원사업 프로그램은 이를 실천하기 위한 첫 단계”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곽 교수에게도 최근 깊어지고 있는 ‘이공계 기피’ 현상은 해결하지 못한 숙제다. 중·고교 시절 수학·과학 공부에 어려움을 느끼며 문과로 진학하는 학생이 많고, 이공계에서 뛰어나다는 자원은 의대로 쏠리는 경향이 점점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곽 교수는 “학사 수준에선 그래도 ‘취업이 잘된다’는 이유로 공대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이 많다”면서도 “심각한 문제는 석사 이상 대학원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4차 산업을 짊어질 핵심 기술은 학사가 아닌 석사나 박사 수준에서 만들어지는데 이를 끌어갈 사람이 부족하다는 걱정이다. 곽 교수는 “공대 대학원 공부가 워낙 힘들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학사만 마치고 기업에 취업한 동료와의 소득 격차 등에서 느끼는 박탈감도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꼬집었다.


국가의 지원 부족도 문제다. 곽 교수는 특히 국방부가 올해 전문연구요원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밝힌 사실을 아쉬워했다. 전문연구요원 제도는 이공계 석·박사가 병무청 지정 기업이나 공공연구소에서 근무하며 병역 의무를 대신하는 제도다. 특히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상당수가 전문연구요원 제도를 통해 병역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곽 교수는 “국방부는 병력 충원이 어려워지면서 어쩔 수 없이 전문연구요원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라며 “이공계 석·박사들이 상대적으로 잘할 수 있는 기술연구를 통해 국가에 이바지하고 위기에 빠진 중소기업에 힘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곽 교수는 인터뷰 내내 이공계 활성화와 창업 촉진을 위해 국가의 체계적인 지원을 강조했다. 여기에 서울대를 비롯한 교육기관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속 만들어가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곽 교수는 “의지가 있고 도전해보고 싶어도 창업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거나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괜찮은 아이디어만 있다면 성공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 세대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손우성·이희권 기자 applepi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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